경제 뉴스 속 부의 진짜 비법, ‘배 타면 돈 된다’의 역사 김점배 회장의 신용 우산

경제 뉴스 속 부의 진짜 비법, ‘배 타면 돈 된다’의 역사 김점배 회장의 신용 우산

경제 뉴스

오늘날의 금융 시장에서는 ‘신용’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때로는 위축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부채비율, 대출 한도, 담보 등 금융 시스템의 제약이 투자의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는時代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제 뉴스 속에는 지금과 같은 엄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 하나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사례들이 숨어 있다. ‘이광식의 거상열전’이 소개한 김점배 알카우스트레이딩(AL KAUS OVERSEAS TRADING LLC) 회장의 성공담은 단순히 돈을 벌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경영哲学的이야기이다.

1. 가난이 몸에 밴 장흥 소년과 ‘배’라는 단어가 갖는 이중적 의미

1957 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김점배 회장은 중학교 시절, 가난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교육 환경은 지금과 달랐고, 많은 학생들은 생계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거나 일하러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는 교감선생님이 수업을 대신하면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했던 말,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단호한 결심을 내렸다. 자신이 가진 자원을 모두 바쳐 배를 타기로 한 것인데,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선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통한 무역, 즉 글로벌 상거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바로 그 말을 실천하고 나섰다. 당시에는 일반 학생이라면 일반인이 되기 쉽지 않았고, 그가 선택한 길은 여수수산고등전문학교 (현 전남대 여수캠퍼스) 로 진학하여 군대 대신 바다를 택하는, 사실상 당시에는 드물었던 선택이었다. 군대 대신 바다에 출근하는 것이 ‘특례보충역’ 제도를 통해 가능하다는 당시의 상황을 이용하여, 그는 5 년 간의 해상 생활을 통해 군대에서의 의무를 면할 수 있었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경험을 쌓게 된다. 이는 그가 단순히 학생이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실전’의 학생으로 전락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의 고향인 장흥에서는 이미 유명했던 수산인이 몇몇 존재했다. 가장 유명한 것만들면 바로 동원산업의 김재철 명예회장 등이 있었기에,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전남 강진에서 나고자란 동문들의 이야기까지, 그가 배를 타는 꿈을 꾸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이렇듯 초기의 김 회장은 단순한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필요성을 깨닫고 배를 선택한 인물이었다. 배는 그에게 자유의 상징이자, 동시에 생존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2. 기름값이 결정하는 수산생사의 고군분투와 1979 년과 2011 년의 두 번의 위

바다가 가르쳐준 첫 번째 진리는 생선보다 기름이 더 귀하다는 것이라 했다. 원양어업은 먼 거리를 항해해야 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기름장사’라는 것이었다. 그는 1979 년의 유류파동을 회상하며 이를 생생하게 설명했다. 당시에는 이란 혁명을 계기로 국제유가가 급격히 상승했는데, 이는 그에게 첫 번째 대격변으로 다가왔다. 당시 그가 다니던 회사는 기름값 폭등으로 운영이 불가능해져 사실상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79 년과 달리, 당시 그가 다니던 회사는 이미 큰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름값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곧 회사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었다. 그는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육상에 한 달 이상 머무르면 병역 특례 자격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는 곧 오만으로 이동하는 선택을 하게 됐다. 당시 오만은 이미 한국 원양어선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수산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1981 년 오만에 도착한 그는 처음에는 항해사로 일했으나, 곧 현지 수산회사 관리직을 거쳐 2000 년에는 자신만의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사업은 순풍을 탔다. 한국과 일본, 아프리카, 유럽 시장을 개척하면서 수출처를 넓혔고, 오징어와 한치, 갑오징어, 돔, 민어, 갈치 등 50 여 종의 수산물을 국가별 수요에 맞춰 공급했다. 당시 국제유가는 고작 50 달러를 넘지 않았고, 2010 년까지도 80 달러를 밑돌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성장해갔던 것이다. 그러나 2011 년 배럴당 100 달러를 넘어선 국제유가는 그에게 또 한 번의 시험을 치르게 만들었다.

3. \”나는 고기장사밖에 모른다\”고 했던 아프리카 여인의 100 만 달러

2013 년 무렵, 기름값 상승으로 사업은 순풍을 타는 것에서 거센 바람을 맞는다. 그는 사업의 밑천을 모두 넘길 테니 일만 하게 해달라는 뜻으로 코트디부아르의 한 거래처를 찾아가 제안한다. 사업이 곤경에 처했음이 분명했고, 돈을 빌릴 곳도 마땅치 않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호명이었다. 당시 한국 내 상황에서도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무언가 산더미 같은 서류가 필요했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상대편은 남편도 없이 홀로 생선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장사를 시작해 사업가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녀는 \”나는 고기장사밖에 모른다. 배 운영은 자네가 전문가 아닌가. 자네가 하고 나는 좋은 고기만 받으면 된다\”면서 두 차례에 걸쳐 100 만 달러를 보내줬다. 빈손으로 돈을 빌려주기엔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차용증만 한 장 부탁했고, 거래를 하면서 믿음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거액을 빌려준 것은 서로 투자에 쉽게 접근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김 회장은 \”아프리카에서 만난 거래처가 사람 하나 믿고 거액을 빌려준 일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국인 한국에서조차 돈을 빌리고 싶어도 빌릴 곳이 없었던 상황에서, 서로 투자를 쉽게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아프리카에서 단지 거래를 하면서 믿음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100 만 달러를 빌려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상거래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신뢰가 형성될 때 나타나는 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 신뢰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깊어졌으며, 20 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인연이 여전히 존중받고 있음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4. 20 여 개국, 50 여 종의 수산물이 만들어내는 글로벌 공급망의 확장

현재 김 회장의 회사, 알카우스트레이딩은 트롤선 4 척을 운영하며 20 여 개국에 수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물품 수출을 넘어서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직원은 대략 210 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절대 다수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넘어 사업을 지속해 나간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한 해 매출만 2500 만 달러 안팎에 이르는 기업은, 당시와 비교되어도 충분히 성장한 기업으로서의 위치를 견지하고 있다.

그는 선박 인수차 이란을 찾았을 때의 모숩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만을 기반으로 인도양에서 원양어업 사업을 하는 그는, 지금도 그 지역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그가 30 년 이상 오만에서 일하며 현지 사회와도 깊은 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평화의 샘물 개수식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처럼, 그는 비즈니스와 공존하는 현지 사회 기여에도 앞장서고 있음을 보여준바 있다.

이처럼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은 단순한 돈이 아닌, 신뢰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아프리카 여인과의 인연은 그가 사업 초기의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글로벌 공급망 확대의 중요한 파트너로 작용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와의 거래처는 이후로도 중요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신용’은 금전적인 거래를 넘어 사회적인 신뢰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5. 경제적 성공 이상의 가치, 한상드림장학회의 사회환원 활동

하지만 그가 가장 큰 보람으로 꼽는 것은 사업이 아닌 사회환원활동이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상드림장학회는 해마다 5 명에게 500 만원씩国内外에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선이 아닌, 사회적 책임 (CSR) 을 수행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한국경제에서 가장 큰 기업인들은 대부분 이런 사회환원활동에 앞장서고 있지만, 많은 기업이 형식적인 기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 회장은 ‘사람’과 ‘생각’을 중요시하며, 기업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기업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그는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 (월드옥타) 무스카트 지회장, 중동아프리카한상총연합회장, 한상드림장학회 이사장, 민주평통 유럽·중동·아프리카지역 부의장 등 여러 직함을 맡고 있지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임을 강조한다. 이는 ‘배를 타면 돈 번다던 말, 진짜였다’는 표현이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실제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공 사례임을 보여준다.

6. 경제 불확실성 속 신용이 주는 안락함, 우리 투자자에게 주는 교훈

오늘날의 한국 투자자들은 금리, 물가,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김점배 회장의 성공담은 우리에게 ‘신용’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 없이는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없다. ‘100 만 달러’는 돈의 양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신뢰가 형성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자산’의 양을 의미한다.

김회장은 \”돌아보니, 사람은 장사는 신용으로 하더라\”라고 강조한다. 이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겪고 있는 부채 문제나 자금 조달 문제 등을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도 ‘신용’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보다, 파트너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윤이 많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김점배 회장의 사례를 통해 경제 뉴스에서 자주 다루는 ‘금융 위기’나 ‘경기 침체’를 넘어, 보다 근본적인 ‘신용 경제’의 가치를 살펴보았다. 배를 타지 않은 현대 투자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교훈은, ‘안정적인 사업’보다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배를 타는 일은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투자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글: 이광식 경제전문 블로거

경제 뉴스 속 김점배 회장 사연은 단순한 창업 기사가 아니라, 인간관계와 신뢰가 어떻게 거대한 부를 생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부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러한 ‘신용’의 가치를 한번쯤 되돌아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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